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살라흐 앗 딘 유수프 (문단 편집) === 시리아 통일 전쟁 === 한편 자지라 원정 중 살라딘은 십자군이 다마스쿠스 일대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그는 '냅둬라. 그들이 마을들을 점령하는 동안 우리는 도시들을 취할 것이고, 우리가 돌아갈 때쯤이면 그들과 대적할 더 큰 힘을 얻은 채일 것이다.' 그리고 3일간 알레포를 포위하며 무력시위를 벌인 살라딘은 더 북상하여 장기 왕조의 심장부인 모술을 포위하였다. (1182년 11월 10일) 살라딘은 킨다 문, 동생 타즈 알 물크 (왕들의 왕관) 이마디야 문을 맡았다. 봉신인 히신 카이파의 누르 앗 딘은 '다리들의 문'을 맡았다. 하지만 한달간의 포위에도 별 성과가 나지 않자 살라딘은 포위를 풀고 남쪽으로 3일간 행군, 모술의 보급로 차단을 위해 신자르를 포위하였다. 도시는 15일간 저항했으나 12월 30일 함락되었고 살라딘이 말릴 틈도 없이 튀르크 병사들은 저항의 대가로 약탈을 자행하였다. 겨우 신자르 총독과 그 장교들을 구출한 살라딘은 그들을 명예롭게 대해주며 모술로 보냈다. 1183년 5월 6일, 살라딘은 티그리스 강변의 견고한 성벽도시인 디야르바크르를 점령하였다. 시내에는 많은 보화와 무기, 그리고 백만권의 책이 있다고 알려진 도서관이 있었다. 살라딘의 재상 카디 알 파질은 자신이 택한 책들을 낙타 70여마리에 실었다고 한다. 한편 아직 모술, 알레포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한 영토 경영을 피한 살라딘은 디야르바크르를 자신의 충실한 봉신인 히신 카이파의 누르 앗 딘에게 주었다. 그리고 알레포의 장기 2세가 십자군과 동맹하고 아이유브령 시리아를 습격한다는 소식에 살라딘은 모술 대신 이번엔 알레포로 향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